※ 이 글은 2023년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록입니다.
아침 8시에 렌트카가 예약되어 있어 전날 12시 전에는 침대에 누웠던 것 같다. 도미토리 방 내에 전기 난로를 틀어주긴 하는데,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는 침대 칸 안에는 공기가 꽤 찼다. 일본에서, 그것도 눈길에서 운전을 할 걸 생각하니 조금 걱정이 되어 유튜브로 일본의 매너 운전 영상들을 찾아보다가 잠들었다. <오사카사는사람들TV> 채널의 마츠다 상이 알려주는 '오사카에서 운전하는 법' 영상을, 운전 배우려고 들어갔다가 수트핏에 빠져 넋놓고 보다 잠들었던 것 같다. 차선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것도 있지만, 일본은 속도 규정을 매우 잘 지키로 유명하여 운전 성질만 죽이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5~6년 전이긴 했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할 때 반대 차선 운전을 경험한 적이 있어 이 부분은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시내를 조금만 주행하다보면 금방 익숙해지겠지.
6시 반 쯤 일어나 세면백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샤워실 바닥에 발이 닿자 잠이 확 달아났다. 어제 체크인할 때 숙소의 호스트인 요시에 상이 알려준대로 바닥에 놓인 전기 난로의 전원을 켜니 따끈한 바람이 금방 방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샤워부스 안에 들어가 물을 켜니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진다. 이 숙소는 정말 기대 이상이다.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오니 요시에 상이 아침 조식으로 나오는 빵과 뜨거운 물을 챙겨주셨다. 조식이 너무 간소하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제 친해진 일본인 친구는 이미 체크아웃을 하고 떠났다고 한다. 하루 밖에 대화를 못해 아쉬웠지만 전날 인스타그램 계정을 교환했다(나중에 그 친구가 한국에 놀러왔을 때 다시 만났다). 렌터카 센터로 향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삼각김밥도 챙겼다. 신발에 눈이 밟혀 나는 뿌드득 뿌드득 소리가 낯설었다. 오늘은 삿포로 시내를 벗어나 약 150~200km 정도 떨어진 '물의 교회'라는 곳을 가보려고 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은 교회인데, 나무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고, 그 한가운데 있는 물 위에 십자가가 서 있다고 한다. 처음 사진으로 봤을 때 눈에 덮여있는 광경이 너무 예뻐서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실제로 웨딩촬영도 많이 한다고. 한 겨울이라 울창한 숲의 모습은 눈에 덮여 잘 보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교회 내외부를 잠깐이나마 구경해보고 싶었다.
드디어 시작되는 모험! 너무 신난 나머지 교회가 오픈되어 있는지 꼭 확인하라고 가보라는 어젯밤 요시에 상의 말은 기억도 못한 채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요타 렌트카를 찾는데 헤매느라 예약시간을 조금 넘겨서 도착했다. 도요타는 일본 렌트카 업체 중에는 금액이 조금 있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서비스가 잘 되어 있다는 유튜브 리뷰를 보고 선택했다. 도착하니 직원 한 명이 통역이 되는 아이패드로 이런저런 안내를 해줬다.


4륜 구동 소형차(Roomy)를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스노우 타이어와 보험까지 해서 빌리는 비용은 10만원. 기름값과 톨비 별도. 이 정도면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휘발유도 한국이랑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톨비도 한국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차를 인계받고 시냇길을 따라 고속도로까지 가는 과정이 살짝 난관이었다. 운전석이 반대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차가 왼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특히 회전을 할때 나도 모르게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몇 번 아찔하긴 했었다. 한국에서 좌회전을 할때면 운전석을 회전 방향과 가까이 붙여서 회전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했다가는 차 옆면을 시원하게 긁어버릴 수 있었다. 깜빡이와 와이퍼의 위치가 반대인 것도 은근히 헷갈렸다. 차선변경을 하기 위해 깜빡이를 켰다고 생각했는데, 와이퍼가 올라오는 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다. 그래도 20분 정도 시내주행을 하다보니 금방 감을 잡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나서부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톨게이트를 지나 한 시간 정도 주행을 했을까, 휴게소 안내문이 보여서 잠깐 차를 세웠다. 일본 휴게소는 어떤 곳일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는데, 그냥 화장실과 자판기만 있어서 당황했다. 주차 공간은 굉장히 넓은데, 건물 안은 정말 간소했다. 휴게소라기보단 규모가 조금 큰 졸음쉼터 같은 인상을 받았다. 짧게 화장실만 들렀다 다시 출발했다.
그로부터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딱!'하는 소리와 함께 윈드실드에 금이 갔다. 앞 유리에 돌이 튄 것 같았다. 재수 없네, 하고 계속 주행을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금이 간 자국이 더 커졌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바로 다음에 나타난 차량 쉼터에 다시 차를 세웠다.

밖에서 충격 부위를 만져보니 유리가 움푹 패여 있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안 좋았다. 돌아가서 직원한테 일본어로 설명해야하는 것도 벌써 골치 아팠다.

한 시간 정도 주행을 더 하자 물의 교회가 위치한 호시노 리조트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와 함께 안내를 종료했다. 그런데 사진에서 봤던 아름다운 광경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어깨 높이까지 쌓인 눈과, 그 눈을 치우고 있는 포크레인들이 보였다.

그제서야 불안감이 엄습하며 어젯밤 요시에 상이 지나가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클로즈'... '조심해라'... 영업 중이 아니라해도 밖에서나마 교회 외관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제설작업이 전혀되어 있지 않은 주변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다녀 주변을 살펴봤다. 현재는 운영 중이지 않은 스키 리조트인 것 같았다. 십자가가 위치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에 신발만 젖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로 돌아와 몸을 녹일 겸 챙겨온 점심을 먹으며 다음으로 가볼 목적지를 알아보았다.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카리베츠 호수. 지금은 얼어있는 물 위에 이글루를 잔뜩 지어놓은 이글루 빌리지가 있다고 한다. 컵라면으로 몸을 조금 녹이고 바로 출발했다.

물의 교회까지 갈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1시간 정도 국도를 달렸다. 확실히 주변 풍경이 눈에 더 잘 들어와 편안히 경치 감상을 하면서 갈 수 있었다. 내가 강원도에 온 건가 헷갈리는 친숙한 풍경이 계속 되다가도, 틈틈이 보이는 일본어 표지판과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건축 양식들이 이질감을 자아냈다.


주변이 텅텅 빈 산길을 따라 정속 주행을 하다보니 (시내는 60키로 이하로 달렸다) 살짝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산길로 들어갈수록 매끈했던 도로가 비포장 도로로 변했고, 길이 미끄러워졌다. 경사진 길에서는 조금씩 긴장하면서 운전했다. 간혹 반대쪽에서 나오는 차를 위해 갓길로 살짝 비켜줬는데, 갓길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몇 번 바퀴가 헛돌기도 했다. 스노우타이어를 요청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길을 따라 얼마쯤 갔을까,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이 나타났다. 터널을 통과하자, 사방이 산으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골짜기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인 시카리베츠 호수가 눈 앞에 보였다. 호수 위에는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차를 세우고 지금까지의 이동 경로를 살펴봤다. 정말 외딴 곳에 도착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국도가 깔린 평야를 한참 달리다가, 어느 새 첩첩산중의 초입에 도착해 있던 것이다. 북쪽으로는 홋카이도 섬 최북단까지 산길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북쪽 산길을 따라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호수를 살펴보기 위해 차에서 내려 호숫가로 걸어갔다. 탁트인 광활한 얼음 호수 위로 작은 이글루 마을이 보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와 비교해 너무 검소한 마을의 모습에 살짝 실망했지만, 그와 대비되는 경치가 경이로웠다. 해발 804미터 위에 위치한, 홋카이도에서 가장 높은 호수. 북쪽으로 산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걸 보면 호수의 길이가 대략 2km는 되어 보였다. 눈이 없는 봄이나 여름에 왔더라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웠을 것이었다.

이글루 마을 직원에게 주변에 커피를 마실 곳이 있는지 물어보자, 바로 뒤에 있는 네이처 센터 방향을 가리켰다. 2층에서 통으로 카페 겸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생각에 서둘러 달려갔다. 문 앞에 '마스크 착용' 표시가 보였다. 그제서야 마스크를 차에 두고 내린 걸 깨닫고는 차에 돌아가 마스크를 챙겨 나온다.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를 실컷 마시느라 일본은 아직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한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하루종일 운전을 하느라 많이 피곤해진 상태에서 마시는 첫 커피였다. 한국에서는 카페인 중독자 수준으로 커피를 마셔댔던 나라서, 운전하는 내내 커피 생각이 나서 혼났다. 경치를 구경하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천천히 홀짝거리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홋카이도는 3월까지는 겨울로 취급을 한다. 내가 호수를 방문했던 날은 겨울 막바지였던 셈인데, 며칠 뒤면 이글루 마을이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카페도, 이글루 마을도, 사람이 많이 없었다. 내 옆 자리에 앉은 손님은 바깥 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고 일어났다. 물의 교회가 폐쇄된 상태였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바로 여기로 와서 여유롭게 식사를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차량 반납까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간이 조금 빠듯하여 오래 있지 못해 아쉬웠다. 이곳은 꼭 날이 따뜻할 때 다시 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커피로 충전된 기력으로 차에 올라타 다시 시내로 향했다.

반납 시간을 30분 정도 남겨두고 시내로 들어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유소를 찾느라 시내를 20분 정도 헤맸다. 주유소에서도 온통 일본어로 된 키오스크를 작동하느라 애를 먹었다. 보다못한 직원이 와서 영어 메뉴를 켜주셨다. 해외를 나오면 이런 일상적인 활동 하나하나가 다 새롭다.

주유를 하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거의 반납시간이 다 되었다. 렌터카 센터에 전화를 걸어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부족한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해봤지만, 직원도, 나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직원이 통역 전문 직원에게 연락을 취해 삼자대화를 끝내고 나서야, "3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 성공적으로 전달되었다.
아침에 내게 차를 전달해준 여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리자마자 앞유리가 깨진 걸 몸짓과 입에서 나오는 특수효과음을 내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걸 놀랍게도 알아들은 것 같은 직원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기다리느라 야근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차 반납이 완료되자 직원은 톨비 계산을 위해 계산기에 금액을 적어 내게 보여줬다. 8,250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살짝 놀랐다. 고속도로를 하루종일 탔는데 만 원도 안 나왔다고? 내심 기분이 좋은 상태로 카드를 꺼내려다가 엔화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 엔화는 0을 하나 더 붙여야 한다. 톨비가 82,500원 가까이 나온 것. 렌트카 1일 비용 만큼 나온 셈이다. 이번엔 진짜로 놀랐다. 리액션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직원이 문제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되게 비싸네요.." 한 마디 하자 자기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줬다.
이렇게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를 다녀왔다. 가계부 앱에 기록을 하며 여행 중에 다시는 차를 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다짐은 깨지고 만다.
'여행 > 일본 전국배낭여행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본배낭여행 #5-하코다테] 일본 현지인들의 휴양지에서 요양하기 (0) | 2023.12.24 |
|---|---|
| [일본배낭여행 #4-홋카이도] 하코다테로 가는 길 (0) | 2023.12.24 |
| [일본배낭여행 #3-노보리베쓰] 지옥 온천마을 탐험기 (0) | 2023.12.08 |
| [일본배낭여행 #1-삿포로] 일본행 편도 1명이요. 정감가는 게스트하우스 입성기 (0) | 2023.11.22 |
| [일본배낭여행 #0-프롤로그] 대학원 졸업, 끝나지 않는 논문 작업.. (0) | 202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