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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전국배낭여행 (2023)

[일본배낭여행 #4-홋카이도] 하코다테로 가는 길

by 구름잡이 2023. 12. 24.
※ 이 글은 2023년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록입니다.

삿포로는 가족들끼리 연례행사처럼, 최소한 2년에 한번씩은 겨울에 여행을 오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에서는 삿포로나 오타루에서 긴 시간을 보낼 필요성을 못 느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잘 가지 않는 지역들이 가보고 싶었다. 

처음 후보지에 올렸던 곳은 홋카이도 가장 북단에 봉오리처럼 솟아 있는 소야곶이었다. 불과 50km 위로 러시아의 사할린 섬과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일본 북단에서 남단까지 여행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만큼, 일본의 최북단을 가본다는 상징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두번째 후보지는 동쪽으로 홋카이도 섬을 가로질러 해안가에 위치한 아바시리였다. 유빙이 떠 있는 물 위를 쇄빙선을 타고 투어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꼭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다. 먼 미래에 가보게 될 남극의 체험판 정도되지 않을까. 내 생에 얼음만 다 녹지 않는다면..  

문제는 두 지역 모두 차가 없이는 편하게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주에 렌트카 하루 이용 비용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지라, 여행 초기에 다시 렌트카를 이용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렌트카 하루 빌리는게 며칠치 숙박비로 느껴지는데다가, 기껏 비싼 JR패스도 끊어놓았기에 가능하면 열차를 이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개의 후보 대신 북해도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하코다테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꽤나 유명한 관광지인데, 섬의 최남단에 있어 삿포로나 오타루에 비해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었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하코다테에만 있는 유명한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있다고 게스트하우스의 친구에게 들었다. 대학원 시절 햄버거가 주식이었던 내 호기심을 꽤나 자극했다. 

전날은 삿포로에서 하코다테로 가는 길에 있는 노보리베쓰 ‘지옥계곡’에서 온천을 하고, 역 앞의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했다. 숙소 근처에 식료품점이 있어서 저녁을 사서 숙소로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계곡을 내려오니 시간이 너무 늦어 편의점 밖에 식사를 할 곳이 없었다. 도시락과 감자칩, 닭꼬치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몸이 흠뻑 젖은 채로 들어온 나를 직원들이 반겨줬다. 젊은 남자와 여자였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비에서 겉옷을 말려놓고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두 직원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가 식사를 마칠 무렵 남자 직원이 다가와 한국에서 왔느냐고 말을 걸었다. 서로 부족한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그 사이를 중재해주는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대화를 나눴다. 남자 직원의 이름은 ‘콘타’(였던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중간중간 돈을 벌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나중에 인스타를 보니, 정말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는 친구였다. 

그가 내 여행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몇 안되는 문장 중에 “홋카이도에서 큐슈까지 갑니다”를 시전했다. 내일은 하코다테로 내려간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자 그도 하코다테에 도착하면 로컬 햄버거를 꼭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아니 햄버거가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추천들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밥을 먹고 비에 젖은 빨래를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에 들어가는데, 생김새가 비슷한 두 남자 게스트가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 둘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사촌지간이었다. 내가 입고 있던 ROKA 티셔츠를 보고는 그들도 군복무를 했기에 반가워서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의무복무 기간이 있다. 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복무를 마친 기념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었다. 전역하고 여행을 온거냐고 묻자 이들 중 동생이 막 군복무를 마치고 세계여행을 시작했다고 설명해줬다. 형은 내 또래로 이미 과거에 군복무를 마치고 여행을 한번 다녀왔는데, 동생과 함께 두번째 여행을 왔다고 말해줬다. 낭만 넘친다고 생각했다. 

몇달 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이스라엘 하마스 분쟁을 뉴스에서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이 두 사람이 떠올랐다. 잠시 만났던 인연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혹시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여행을 중단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은 아닐지, 다치지 않고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밤새 비가 왔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제의 추위에 목이 완전히 잠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행 초반부터 몸살이라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오니 어제 만난 이스라엘 형제 중 형이 바닥에 매트를 깔고 아침 기도를 하고 있었다. 몸에는 테이프 같은 걸 칭칭 감고 있었는데, 그것도 어떤 의식의 일환이었을까? 누적된 여행 피로로 인해 파스를 붙인걸까? 복도는 꽤나 쌀쌀했는데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역시 군필자인가. 같은 군필자지만 으슬으슬 추웠던 나는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이라고 하던데, 그곳에 도착하면 날이 좀 풀릴까. 

샤워를 마치고 정신이 조금 들자 커피 생각이 강하게 났다. 평소에는 하루 세 네 잔씩 마시다가, 여행을 와서는 잘 안 마시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긴 여정을 앞둔 만큼, 몸상태와 날씨 모두 커피를 격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숙소와 기차역 중간에 식당 겸 카페가 있어 10시쯤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 보이는 이스라엘 형제는 어제 내가 갔던 지옥계곡 쪽으로 향했다. 나는 우산을 펴고 카페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내가 다녀가고 얼마 뒤에 촬영된 카페의 로드뷰. 겉으로 보기보다 내부가 더 넓었다.

식당은 작은 단독주택처럼 보이는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출입문 옆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회오리 계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2층도 영업을 하거나, 주인이 사는 곳이겠거니 생각했다. 번역기를 돌려 식당 이름을 보니, “식사 및 카페 e 패밀리” (食事&喫茶 eファミリー)였다. 강력한 로컬 감성이 느껴져서 실패하긴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커피 한잔에 담긴 정성

식당 안은 깔끔하게 정리된 다방같은 분위기였다. 건물이 뒤쪽으로 길었던건지 길 밖에서 볼 때보다 실내가 안쪽으로 넓었다. 실내 끝에도 2층으로 이어지는 회오리 계단이 있었다. 2층도 영업장이었나보다. 출입문 바로 옆 창가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얼마 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뜨거운 커피 한잔, 얼음물 한잔, 그리고 랩에 쌓인 초콜릿을 내오셨다. 고소하고 은은한 향을 잠시 음미하고는, 순식간에 마셨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다시 여행 기운이 솟아났다.

오늘의 목적지. 홋카이도 남단의 하코다테.

노보리베쓰에서 하코다테까지 해안가를 따라 직행열차로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였다. 바로 하코다테로 가기보다는 중간중간 서서 식사와 구경을 해볼 생각이었다. JR패스로 마음껏 환승을 해도되니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1시간 정도 열차를 타고 가는 길에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맑아졌다. 덕분에 예쁜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져서 ‘야쿠모’라는 여느 시골 분위기가 나는 작은 동네에 내렸다. 지도상으로 근처에 카레, 피자 등 몇 가지 음식점이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소바집을 찾았다.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배차 간격을 고려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네구경을 하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동네는 정말 그냥 작은 동네였다. 오래되어 보이는 주택들이 길을 따라 나있고, 초등학교, 중학교도 보였다. 별것 아닌 풍경도 외국에 나오면 뭐가 그리 신기한지. 가방 무게가 발목에 부담을 주지만 않았다면, 더 천천히 돌아 다녀봤을 것 같다. 시골은 시골이었던 걸까, 구글맵에 영업중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식당이 휴무였다. 허무함보다는 배고픔에 다시 역사로 돌아와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웠다. 식비 아꼈으니 다행이라며 위로했다. 

허름한 무인역 "오토시베".
만화 속 공간에 온 것만 같았다.

다시 열차를 타고 가면서 풍경을 구경하다가, 만화에나 나올법한 작고 오래된 역들이 보였다. 궁금해서 아무 역에서나 내려봐야겠다 싶었다. 내가 내린 곳은 ‘오토시베역’이라는 무인역이었다. 허름한 초록색 지붕의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알록달록한 색의 의자들이 정렬되어 있고, 모든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마치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날씨도 완전히 맑아져서 역사 외부도 마치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한참을 내부와 외부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여유를 부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깥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열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하코다테로 향하는 열차는 이미 운행이 종료되었다. 어쩔 수 없이 역 밖으로 나와 버스를 찾아 돈을 내고 하코다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중간중간 열차에서 내려서 구경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JR패스의 값어치는 했다고 위안을 삼았다. 계획보다 3~4시간 늦게 하코다테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이었다. 피곤해서 햄버거를 먹으러 갈 힘도 없었다.  

“이게 여행이니까”라는 무적의 말로 오늘 하루를 낭만있게 포장하고는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