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3년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록입니다.
오소레잔을 보기 위해 무쓰까지 왔지만, 겨울에는 산 전체가 폐쇄된다는 말을 듣고 허무해졌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즉흥적인 여행이 좋긴 하지만, 이번엔 너무 기본적인 실수였다. 삿포로에서 물의 교회를 찾았다가 오픈 시간을 착각해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하루 종일 추위에 젖어 있었으니 우선은 쉬어야 했다. 삿포로에서부터 계속된 추위와 비바람에 열이 나고 몸살기가 느껴졌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 와서 숙소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뜨거운 물에 반신욕을 하고 나니 몸의 피로가 조금씩 풀렸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조식을 먹으며 계획을 비웠다. 오늘은 그냥 숙소에 머물며 번역 일을 조금 하고 쉬기로 했다. 마침 소일거리 하나가 들어온 참이었다. ‘호캉스하면서 여행 경비나 벌자’는 생각으로 편의점 간식을 잔뜩 사 왔다.

오후는 고요했다.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자고, 또다시 작업을 했다. 하코다테에서도 며칠간 호캉스를 했던 터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게 아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오히려 필요했던 것 같다.
내일은 남쪽으로 하루 종일 이동해야 했다. 오늘 안에 처리할 일을 끝내놓으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도 참치의 고장인 오마까지 와서 참치회를 못 먹고 가는 건 아쉬웠다. 그래서 어제 들어가지 못했던 초밥집, ‘스시 우에노(鮨うえ乃)’를 다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어제 숙소로 오는 길에 마주쳤던 식당이었다. 구글맵 상의 영업시간에는 브레이크타임이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중간에 다섯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 있어 어제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숙소에서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1시간쯤 걸어가야 했다. 어제 지나쳤던 길이라 그런지, 주택가를 따라 걷는 길이 나쁘지 않았다.
브레이크타임이 끝나는 5시에 맞추어 식당에 도착했다.
손님은 없었고, 바 테이블 너머로 사장님이 커다랗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플레이트를 준비하고 계셨다. 예약 손님용인 듯했다. 어제 나를 맞이해준 아주머니가 이번에도 반갑게 맞으며 바 자리에 앉게 해주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사장님께 인사하고 메뉴판을 펼쳤다. 세로쓰기라 번역기가 잘 먹히지 않아, 무난한 1인 세트를 주문했다.

곧 사장님이 초밥 한 점을 만들어 내 앞에 올려놓았다. 새빨간 등살(아카미)이었다. 군침이 돌았다.

첫 입. 혀에 닿는 순간 퍼지는 미묘한 철 향, 그리고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여운까지. 방금 먹은 이 녀석은 아마 홋카이도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나 같은 여행자였겠지. 동질감.
내가 그리 고급스러운 입맛을 가지고 있진 못하더라도, 정말 싱싱한 녀석들이라는 것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음미하면서 먹게되는 맛이었다. 나도 이런 맛이려나?
뒤이어 다른 초밥들도 이어졌다. 사장님이 종류를 설명해주셨지만, 일본어가 서툴러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하나같이 신선했다. 눈을 감고 음미하게 되는 맛이었다.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냐고. 서툰 일본어와 손짓으로 여행 중이라고 설명하자, 예전에 한국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다며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2008년 무렵이었다고 했다. 이런 시골에서 조용히 초밥을 쥐고 있는 장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세트를 다 먹어 치우고, 미소된장국으로 입을 헹궜다. 새우머리가 국물을 더욱 진하게 내주고 있었다.

참치초밥 한 세트를 더 먹고 싶었다. 파파고로, “참치초밥 한 접시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나’를 더 달라고 표현했다. 몇번이고 나에게 무언가를 되물으시던 사장님은 딱 한 조각을 내주셨다. 웃음이 나왔다. 세 점을 더 부탁드리자, 이번에는 한 점씩 정성스럽게 만들어 내 앞에 올려주셨다.

결국 오마까지 와서 보려던 오소레잔은 가지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식당에서 마음이 위로받았다. 초밥 한 조각 한 조각에 정성이 담겨 있었다. 계산서를 받아보니 5,000엔.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도로 한가운데 어둡고 큰 짐승이 서 있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멈춰 서서 보니 귀 옆으로 짧은 뿔이 나 있었다. 염소였다. (사실 염소인지 사슴인지 잘 모르겠다..)

동네 곳곳에 ‘염소(또는 사슴) 주의’ 표지판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천천히 걷는 모습을 한참이나 따라가며 구경했다.

녀석은 나는 신경 쓰지도 않고 나무와 풀을 뜯어먹으며 돌아 다니더니, 어느 순간 언덕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잠시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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