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3년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록입니다.
무쓰를 떠나기 전날 밤, 종이 지도를 펼쳐 다음 여정을 확인했다. 이동 경로는 구글맵이 가장 편했지만, 배낭여행 분위기를 내보겠다는 마음에 도착날 공항 서점에서 종이 지도를 샀다. 그 뒤로는 들르는 곳마다 펜으로 작은 표시를 남기며 이동하는 중이다.

며칠 뒤의 최종 목적지는 도호쿠 지방의 최대 도시인 센다이. 센다이를 거점으로 여행한 뒤 다시 도쿄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시모키타 반도를 벗어나 아래로 향할 예정이었다. 일단은 아오모리현의 하치노헤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무쓰에서 약 100km, 두 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다. ‘센베이지루’라는 고기 국물에 센베이를 넣은 요리가 유명하다길래 오늘 점심 메뉴로 정해두었다. 여기를 반나절 정도 구경하고, 그 다음 목적지를 생각해보려 했다.
오미나토역 바로 앞에 숙소를 잡은 덕에 아침을 편히 먹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챙긴 뒤 바로 열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오소레잔이 멀어지는 게 보였다. 다음엔 따뜻한 날 꼭 다시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적었다.

며칠간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퍼져, 하치노헤까지 가는 동안 바깥 풍경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정오가 조금 넘어 하치노헤역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동네를 둘러보려고 백팩을 역 물품보관소에 넣었다. 기차역마다 다양한 크기의 보관함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이때였다. 교통카드로 결제하면 QR코드가 찍힌 영수증이 나오고, 그걸로 나중에 짐을 찾으면 된다. 부피가 큰 가방이라 가장 큰 칸에 넣어두었다. 한국 지하철 역에서도 숱하게 볼 수 있는 물품보관소였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하치노헤역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두 정거장 더 갔으면 중심가에서 내릴 수 있었는데, 너무 일찍 내렸구나 싶었다. 일단 버스를 타고 시내 쪽으로 이동했는데 거의 30분 가까이 걸렸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 음악이 함께 나오는 게 특이했다. 예술적인 느낌도 있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동북쪽에는 만이 펼쳐져 있고,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괭이갈매기 신사가 나온다. 갈매기 번식지로 유명한 곳인데, 사진에서 본 광경이 인상 깊어 직접 가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동네를 한참 헤맸다. 나중에 보니 ‘미야기 공원’이라는 큰 공원을 지나갔는데, 점심시간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업도시라 그런지 도심은 주거지 성격이 강한 듯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예상보다 본격적인 분위기였다. 회를 뜨는 쉐프들을 마주보고 앉는 형태였고, 메뉴에는 스시가 주력처럼 보였다. 센베이지루만 먹으려던 계획이 살짝 어색해졌지만, 그래도 600엔짜리 센베이지루만 주문했다.


작은 국그릇이 바로 나왔다. 생선 육수에 생선 조각이 들어 있어 국물 맛은 깊었고, 센베이는 물에 불어 수제비처럼 흐물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센베이는 한국 과자가 더 맛있는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괭이갈매기 신사까지 걷기로 했다. 기차를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배차 간격이 애매했다. 지도상 1시간 거리였지만 겨울 바다의 맞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와 1시간 반 가까이 걸린 것 같다. 3월이지만 위도가 높아 그런지 꽤 추웠고, 귀마개가 없었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해안 쪽으로 한참 걸어가니 멀리 신사가 보였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검은 점처럼 보이던 갈매기 떼가 신사 주변을 빙글 돌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날갯짓이 또렷이 보였다.




하늘뿐 아니라 땅도 이미 갈매기들의 영역이었다. 신사를 받치는 언덕은 짝을 찾는 갈매기들로 가득했고, 계단은 하얀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지 가까이 가도 요지부동이었다.

인간들이 오던말던, 열심히 자기들끼리 구애의 노래를 부르짖고 있었다.

강풍을 정면으로 맞으며 공중부양하듯 떠 있는 녀석들도 있었고, 불상의 머리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평온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여기는 투자 운이 좋아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던데, 나도 마음속으로 잠깐 내 주식이 회복되길 빌었다.

신사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처음에는 소란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잔잔하게 들렸다.

추위가 점점 심해져 서둘러 내려왔다. 애플워치를 보니 오늘 8.6km를 걸었다. 수치를 보고 나니 더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신사 앞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하치노헤역으로 돌아갈 열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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