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배낭여행기를 기획했을 때, 나는 그간의 여행을 시간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기록하는 연대기적 연재물을 떠올렸다. 한 편 한 편, 내가 걸었던 발자국을 그대로 다시 따라가며 그 기억을 곱씹는 방식으로.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그 사이 직장인이 된 나에게 이 시리즈는 연재물로서의 의미는 많이 퇴색된 것 같다.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을 끄집어내 적어 내려가는 단편에 가까워졌다. 가장 최근에 올린 ‘센다이 입문기’조차 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시간이 흐르며 생생했던 기억도 바랬다.
늦장마가 시작되며 비가 자주 내린다. 이런 날이면, 일본 중부의 산속 마을을 향해 우비를 입고 하염없이 걸어가던 날이 떠오른다.
그 기억을 지금 당장 쓰고 싶어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쉽지 않다. 그날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기록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식을 바꾸려 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정직하게 써 내려가는 여행기가 아니라,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그때그때 꺼내어 기록하는 방식으로.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처럼, 시간을 재배열하는 정교하고 실험적인 예술인 척을 해볼 수도 있겠다.
여행은 분명 시간의 순서를 따른다. 하지만 여행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방식이 아주 부자연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빗소리를 들으며, 그날의 사진들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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