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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투자 이야기

내가 투자하는 이유 - 4. 우리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by 구름잡이 2026. 1. 27.
낙관주의자의 고백

지난 글들에서 나는 '구름을 쫓는 성격'이라거나, '자유'를 갈망하는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를 해왔다.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의 선의와 기술의 진보를 믿는 낙관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시선을 '나'라는 개인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미래로 돌리면, 솔직히 말해 그 낙관은 오래가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투표권이 생기고, 세금을 내고, 경제활동의 주축이 되어갈수록 매년 미래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지고 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투자를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 다소 불편하고 비관적인 현실 인식에 관한 기록이다.

1. 예견된 붕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공포는 인구 구조다. '인구 절벽'이라는 단어가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실체는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의 감소가 본격화되는 시점은 앞으로 불과 10년 안쪽이다. 한국의 2차 베이비붐 세대(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최근 합계출산율이 0.7명대 바닥을 찍고 0.8명대까지 반등할 기미가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수치가 소폭 오른다 해도 인구 감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수(constant)'가 되었다. 아이를 낳을 부모 세대의 인구 자체가 이미 줄어들었기에, 출산율이 기적적으로 인구 대체 수준(2.1명)까지 치솟지 않는 한 총인구의 축소는 피할 수 없는 결말이다.

더구나 투자자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미미한 상승세는 추세 전환이라기보다 하락장 도중 잠시 나타나는 '데드캣 바운스(Dead Cat Bounce)'로 보이기도 한다. 한 세대 만에 인구가 3분의 1로 급감하는 이 가파른 궤적 위에서, 우리가 머지않아 한반도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제 상상이 아닌 예정된 미래의 데이터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국민연금은 시한폭탄이다. 정부의 공식 재정 추계에 따르면 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이다. 물론 최근 국민연금 개혁와, 최근의 높은 수익률로 2060년대까지 고갈 시점이 미뤄졌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우리 세대의 은퇴시점이다. 90년대생인 내가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었을 때 곳간에는 쌀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고? 인구 구조가 무너진 상태에서 세금으로 이를 메우려 한다면, 그 막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청년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청년은 내 자녀일 것이다. 내 자식에게 그런 짐을 지워줘도 되는건가?

2. 노동의 가치 하락과 자산 격차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 시스템,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자산 가격(부동산, 주식)의 상승 속도는 근로 소득의 증가 속도를 아득히 초월한다. 노동은 신성하지 않다. 

더 뼈아픈 건 시스템의 편향성이다. 노동으로 번 돈에는 가차 없는 세금이 매겨지지만, 자산 증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생애 소득 곡선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꺾이는 '역 U자형'을 그리는데, 노동 가치마저 하락하는 세상에서 근로 소득만 믿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건 순진함을 넘어선 무모함이다.

국내 주식 시장(국장)에 대한 회의감도 여기서 비롯된다. 인구가 줄고 내수 시장이 쪼그라드는 나라의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우상향 할 수 있을까? 물론 혁신 기업은 나오겠지만, 그런 혁신이 가시화되었을 때 투자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막연한 애국심으로 내 자산을 묶어두기엔, 한국 시장의 미래 펀더멘털은 너무나 취약하다.

3. 가장 부유한 부모, 가장 가난한 자녀

우리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풍요 속에 자라며 눈높이는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마주한 현실의 벽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높고 견고하다.

이 괴리는 깊은 무기력감을 낳는다. 부모 세대가 누렸던 고도 성장기의 과실은 끝났고, 남은 건 치열한 제로섬 게임뿐이다. 어쩌면 부모의 높은 눈높이가, 자녀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라는 기준이 과거에는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목표'였지만, 지금은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절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치마저 우리 편이 아니다. 인구 구조상 청년은 소수자가 되었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 집단은 필연적으로 다수인 기성세대의 이익을 대변한다. 우리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확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결론: 기대를 낮추고, 나에게 집중하는 힘

이런 상황 속에서,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미래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내가 지금 영위하고 있는 소비 수준을 내 미래에는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또, 국가나 사회가 나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기대, 노동만으로 중산층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비관적인 현실 인식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동하게 만든다. 외부 환경이 척박할수록,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의한 행복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내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 암울한 미래 시나리오 속에서 최소한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다. 거창한 희망 고문보다 냉혹한 현실 인식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