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름을 ‘구름 쫓는 하루’라고 지은 건,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방식에 대한 꽤 정확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구름을 쫓듯 살아온 것 같다. 몽상을 좋아하고, 뜬구름 같은 막연함을 쫓기도 했다. 동시에, 꿈, 자유, 가능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다른 방향을 상상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이런 성향이 항상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머리가 구름에 가 있을수록 발은 바닥에서 떠있게 된다.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우유부단해지는 것이다. 구름을 쫓아온 대가 같은 것이다.
이런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틀이 성격심리학에서 말하는 Big Five 성격 요인이다. Big Five는 인간의 성격을 다섯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외향성/내향성(Extraversion/Introversion), 신경증적 성향(Neuroticism), 성실성(Conscientiousness), 우호성(Agreeableness).
이 다섯 가지 성격 요인은 각각 다음과 같은 차원을 의미한다.
- 경험에 대한 개방성 (Openness to Experience): 새로운 아이디어, 관점, 경험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나타낸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익숙한 방식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 외향성 / 내향성 (Extraversion / Introversion): 사회적 자극과 대인관계에서 에너지를 얻는 정도를 뜻한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활력을 얻는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나 깊은 사고의 과정에서 에너지를 회복한다. 이는 사교성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에너지의 충전 방식에 가깝다.
- 신경증적 성향 (Neuroticism): 스트레스, 불안, 부정적 감정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낸다. 신경증 성향이 높은 경우 감정 기복이 크고 불확실성에 취약한 편이며, 낮을수록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위기 상황에서도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인다.
- 성실성 (Conscientiousness): 계획성, 책임감, 자기 통제력과 관련된 차원이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꾸준히 실행하는 데 강점이 있으며, 낮은 경우 즉흥성이 강하고 루틴이나 반복적인 구조에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 우호성 (Agreeableness): 타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협조적이고 공감적인지를 나타낸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갈등을 피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반면, 낮은 경우 자신의 기준과 판단을 우선시하며 필요하다면 충돌도 감수하는 편이다.
유행처럼 사용되는 MBTI보다는 설명력이 높은 개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델의 장점은 성격을 ‘유형’으로 단정하지 않고, 각 차원에서의 높고 낮음의 조합으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누구나 다섯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어떤 축이 두드러지는지에 따라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 그래서 Big Five는 성격을 재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는 지도에 가깝다.
이 틀로 나를 놓고 보면 비교적 명확해진다. 나는 개방성이 높고, 내향적이며, 중간 정도의 우호성을 가지고 있고, 신경증 성향과 성실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이걸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자면 이런 사람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가능성에 쉽게 마음이 열리고, 하나의 정해진 경로보다는 여러 갈래의 미래를 동시에 떠올린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기보다는 고갈되는 쪽에 가깝다. 감정 기복은 크지 않아 위기 상황에서도 비교적 차분하지만, 대신 루틴을 철저히 지키거나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타인에게 과도하게 맞추지도 않고, 그렇다고 날카롭게 밀어내지도 않는다.
이런 성격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축은 개방성이다. 몇 번 성격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매번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오는 차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미래에 하고 싶은 게 많다.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특정 직업 하나, 특정 라이프스타일 하나로 인생을 요약하는 데서 쉽게 답답함을 느낀다. ‘언젠가는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그 상상은 꽤나 구체적인 편이다.
사고의 성향은 분석적이고 탐구적인 편이다. (지금의) 나는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현상을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내 성향에 잘 맞는 직업이라고 느낀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고, 여러 변수들을 엮어 설명하는 과정을 즐긴다. 성격적으로도 “대충 이런 것 같다”는 설명보다는, 왜 그런지 납득 가능한 논리를 찾고 싶어 한다. 이 분석적 성향은 투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직관이나 분위기보다는, 구조와 맥락을 먼저 보려는 쪽에 가깝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대로 주제를 종종 바꿔주지 않으면 금방 질린다.)
그래서인지 나는 불확실성을 무조건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편이다.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면 불안해지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어떤 가능성이 열려 있는지를 먼저 떠올리는 쪽에 가깝다. 아마 이런 내 기질도 있지만, 내가 심리학을 공부했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석사과정 때 했던 연구는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주제로 삼았었다. 불안장애 연구에서 불확실성은 중요한 개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Intolerance of Uncertainty, IU)이다. 이 성향(IU)은 미래가 불명확한 상황 자체를 위협으로 지각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불확실한 상황은 실제로 나쁜 결과가 발생했는지와는 거의 무관하다는 것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결과가 오히려 좋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다는 상태’ 자체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데서 불안이 발생한다. IU가 높은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빠르게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조급한 결정을 내리거나 상황을 성급하게 종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IU가 낮은 경우에는,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를 일종의 열린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며, 당장의 감정적 안정 대신 장기적인 판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장애 연구에서는 불안의 근원이 외부 사건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해석하는 개인의 인지적 태도에 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확실히 나는 이런 불확실성을 즐기는 편에 가까운 것 같다.
적절한 예시일진 모르겠지만, 이 성향이 드러난 장면 중 하나가 내가 대학원생이었던 2021년 말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당시 내 자산의 상당 부분은 주식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적인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대학원생이던 내 입장에서는 거의 전재산에 가까운 규모였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은 빠르게 꺾였고, 매일 아침 계좌를 확인할 때마다 평가금액은 줄어들고 있었다. 뉴스, 유튜브 등 온갖 매체에서는 부정적인 내용들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 나는 꽤 신이 나 있었다. 평소 좋아해서 용돈을 모아 조금씩 사모으던 주식들을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안해서 던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열심히 돈을 긁어모아 주식을 샀다. 생활비를 하려고 신청한 장학금도 고스란히 투자계좌로 들어갔다. 실제로 그 하락장 국면에서 사모았던 알파벳(구글) 같은 종목들은 지금도 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상위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 선택이 항상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경험은 내가 변동성 앞에서 어떤 감정 상태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신경증적 성향이 낮은 편이라는 설명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후로도 리스크(변동성/불확실성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위험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가두려는 사람에 가깝다. 완벽한 무균실 상태의 안전을 추구하지도 않고, 극단적인 스릴을 즐기지도 않는다. 대신 이 정도의 손실과 이 정도의 변동성은 내가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선택의 여지를 잃지 않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자산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요즘은, 이런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향성이 강해서인지, 나는 비교적 독립적인 사람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내 시간과 선택권이 외부 요인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상태를 불편해한다. 조직의 방향 하나로 삶의 방향이 바뀌거나,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선택을 미루게 되거나,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반복하게 되는 상태. 그런 현실에서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빠르게 소진된다.
여기에 더해 반골 기질도 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납득이 되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한다. 이 성향은 조직 안에서는 종종 불편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지만, 투자와 인생을 조금 더 긴 시계열로 바라보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늘 피상적인 명제들이 ‘당연한 사실’처럼 유통된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다들 이렇게 한다, 이렇게 안 하면 뒤처진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라는 말은 내 안의 반항아를 가장 빨리 깨우는 문장이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친구들도 다 게임기를 가지고 있으니 나도 사달라”고 말하면, “남들이 갖고 있다고 너도 가져야 해?”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땐 억울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말들을 일단 의심하는 편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선택이 내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되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독립성을 얻기 위해 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립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기준에 맞춰 성과를 재지 않고, 남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가 납득한 논리와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굳이 방향을 바꿀 이유도 없다.
돌아보면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투자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에서 자주 이탈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반대편에 무게추를 하나 두고 싶었던 것에 가깝다. 구름을 쫓는 상상력, 느린 결정, 독립적인 사고방식. 이 모든 성향은 그대로 두면 불안정해질 수 있지만, 잘 설계된 투자라는 구조 안에서는 하나의 균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구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조금 더 단단히 붙잡아두는 일. 나이가 들어 불확실성을 마주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해주는 안전망.
그렇게 구름을 쫓는 삶 역시,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음 편에서는 미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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