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기 초, 담임 선생님이 나눠준 진로 희망 조사서에 장래희망을 묻는 문항이 있었다. 지금도 내가 뭐라고 썼는지 기억한다.
“돈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2학년 때 완치되지 못한 중2병의 여파도 조금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남들처럼 특정 직업명을 적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이 문장은 내 삶의 방향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자유롭게 사는 삶’을 강조하셨다. 집 책장에는 보도 섀퍼의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자기계발서의 고전들이 꽂혀 있었다. (물론 로버트 기요사키가 사기꾼에 가깝다는 사실은 크면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두 분의 자유로운 인생관에 걸맞게, 부모님은 내게 또래 대비 상당한 자유를 주셨다. 공부, 진로, 취미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으셨다. 학원 한번을 보내지 않으셨다. 중학생 때 서태지에 빠져 “대학교 안 가고 음악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물론 결국 대학은 갔고, 심지어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원까지 갔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기보다는, ‘자유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체감했던 것 같다.
이 둘은 비슷해 보여도, 나에게는 꽤 큰 차이가 있다.
돌이켜보면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표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더 많았다. 지금도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반지의 제왕’처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담이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봤다.
나는 무엇을 하면 자유롭다고 느낄까?
- 세계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쓰고 싶다.
-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가서 몇달씩 살아보고 싶다.
-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나에게 의미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
- 여름휴가에 별장에 들어가 2주 동안 독서만 하고 싶다.
- 언제든 내키는 곳으로 떠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사색할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내 신념에 어긋나는 일에는 “No”라고 말하고 싶다.
- 자식들한테 용돈받고 살고 싶지 않다.
- 심해 탐험을 해보고 싶다(왕복).
- 우주 여행을 하고 싶다(왕복).
재미있게도 이 리스트의 대부분은, 조금씩이나마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다(우주 여행과 심해 탐험은 제외). 만약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면, 아마 이 목록은 훨씬 짧아졌을 것이다. 여행처럼 소모적인 일에 쓰는 몇백만 원이 기회비용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실제로 대학원을 졸업한 뒤, 그동안 모아둔 약 1,000만 원을 일본 배낭여행 경비로 써버린 적이 있다. 돈이 목표인 사람이라면 명백한 기회비용이다. 같은 기간 내가 투자 중이던 알파벳(구글) 주식에 넣었다면, 지금쯤 200% 수익으로 3,000만 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배낭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에 어울리게도, 나는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우유부단하고, 느릿느릿하고, 어느 정도의 YOLO(You Only Live Once) 성향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에는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동시에 투자는, 이런 내 성향에 대한 일종의 헷지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하고 싶은 것들을 꽤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학부 시절부터 ‘적금 드는 마음’으로 이어온 주식 포트폴리오는 어느덧 내 연봉을 넘어섰다. 여행을 많이 다녀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자유로운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돈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내가 투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싫은 일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 속도를 늦추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사기 위해서.
투자는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나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안전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마, 이게 내가 계속 투자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내 성격, 그리고 미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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