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공항에서 셔틀을 타고 긴자역에 도착했다. 이제서야 도쿄의 한여름이 어떤지 조금은 실감됐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부터 뜨거운 공기가 예고편처럼 따라붙었는데, 도쿄의 여름이 악명 높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파란 하늘엔 구름이 그림처럼 걸려 사진으로는 예뻐 보였지만, 50미터만 걸어도 땀이 쏟아졌다.

어딘가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아 급하게 식당을 찾았다.
그래도 도쿄에 왔으니 초밥집을 찾았는데, 긴자는 명품 거리라 그런지 대부분 오마카세뿐이라 가격대가 높았다. 그나마 구글맵 기준으로 가까운 곳에 3~4만 엔 정도의 식당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웨이팅은 한두 팀 정도라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는지 제일 비싸 보이는 오마카세를 골랐고, 계산은 4만 엔 정도 나왔다. 연초에 오사카에 갔을 때 1년치 여행비를 다 쓰고 온 터라 이번 여름휴가는 되도록 검소하게 보내자고 마음먹고 왔는데, 시작부터 계획이 조금 흔들렸다.

내가 고른 메뉴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나오는 풀코스였다. 양은 많았지만 딱히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서둘러 먹고 자리를 나왔다.

지하철 히비야선을 타고 20분 정도 더 가서 숙소가 있는 롯폰기 역에 도착했다.
몇 년 전 도쿄에 왔을 때는 숙박비에 충격을 받고 신주쿠 한복판의 캡슐호텔에서 일주일 넘게 묵었었는데, 이번에는 3박만 지내기도 하고 호텔에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침 NOL 앱에서 할인쿠폰을 적용할 수 있는 ‘렘 롯폰기’ 호텔을 발견해 예약했다. 앱에는 4성급 호텔, 조식 포함, 이코노미 더블룸이 1박 12만 원 수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운이 좋으면 도쿄타워 뷰를 배정받을 수 있다는 리뷰도 있었다.
위치는 롯폰기역 4a 출구를 나와 도로변을 따라 걸으면 1분도 안되는 거리였다. 이 정도 위치를 감안했을 때, 숙소 가격은 매우 저렴해 보여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예약했다.



체크인 후 받은 키는 5층 방. 도쿄타워 뷰는 이미 멀어졌다고 생각하며 올라갔다.
방은 예약할 때 본 사진 그대로였고, 일본 호텔치고는 안마의자까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좁지 않았다. 바닥에 일자로 누워 팔굽혀펴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막상 커튼을 걷어 건물에 가려진 뷰를 보니 약간 아쉬웠다.


마음에 쏙 든 건 안마의자와 조식이었다.
안마의자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큰 모델보다는 작지만, 하루 종일 걷고 돌아와 피로를 풀기엔 충분했다.


이 호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조식이었다. 기대보다 훨씬 훌륭했다. 3일 내내 접시 두 번씩은 꼭 가져다 먹었다. 특히 초록빛 스무디가 마음에 들었는데, 사과와 시금치 향이 가볍게 섞여 아침에 잘 맞았다. 작은 컵에 담겨 나오지만 러닝을 하고 돌아오면 최소 세 잔씩은 마시곤 했다.


야채는 전반적으로 싱싱했다. 샐러드를 듬뿍 담아 먹었다. 계란 요리는 일본답게 달달했다.




그리고 일본 호텔에서 빠질 수 없는 낫또도 챙겨 먹었다. 작은 팩 형태라 먹기 편했고, 한 끼에 두 컵씩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롯폰기의 가장 큰 장점은 교통이었다. 나카메구로부터 긴자, 아키하바라로 이어지는 히비야선과 요요기·신주쿠를 지나는 오에도선이 모두 가까웠다. 도쿄 주요 지점을 사실상 20~30분 안에 갈 수 있는 위치였다. 이번 여행은 동네를 러닝 코스로 삼고 싶었던 만큼 특히 만족스러웠다.
첫날은 낮잠을 실컷 자고, 해가 지고 난 뒤 롯폰기 힐즈 근처를 산책하며 도쿄타워까지 가볍게 뛰었다. 낮의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중간중간 백화점 건물에 들어갔다 나오며 열을 식혔다.




운동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과자와 맥주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와 첫날을 마무리했다.

둘째 날 아침에는 출근 인파와 함께 나와 고궁 러닝을 했다. 고궁 외곽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약 5km를 도는 원형 코스인데, 아침 7시만 되어도 햇빛이 제법 강했다. 바람은 거의 없었고, 나무 그늘을 지날 때마다 짧게 숨이 돌았다. 러너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가며 서로의 박자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구간에서 햇살이 얼굴을 바로 비춰 피부가 벌겋게 익었다.



셋째 날은 강가를 따라 나카메구로역까지 뛰었다. 물비늘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상가 건물들과 아파트 건물들이 조화롭게 강을 따라 섞여 있었다.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동네였다.





나카메구로역 근처에 도착해보니 역 바로 1층에 츠타야서점과 스타벅스가 바로 붙어있었다. 동네에 작은 카페들도 많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연 곳이 없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다시 뛰어 돌아갈 자신은 없어서 출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시모키타자와로 가서 라이브 공연을 들으며 술 한 잔을 마셨다. 2년 전에 도쿄여행을 왔을 때도 가장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동네였다. 2년만에 돌아오니까 애니메이션 '봇치 더 락'의 성지가 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그것 때문에 다시 온 것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은 숙소에서 시부야역까지 뛰었다. 7시쯤 도착한 스크램블은 아직 조용했고 교차로의 리듬만 천천히 이어졌다.


스크램블 스퀘어의 상징 같은 스타벅스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한국인 직원이 주문을 받아주었다.
2년 전에는 스크램블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테이블이 있었는데, 이번엔 모두 사라지고 벤치 의자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오래 머무는 손님을 줄이기 위한 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만약 도쿄에 산다면 휴일을 이렇게 보내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망상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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