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공부] 전략과 전술
인생에 다양한 변화가 있는 시점에 와 있다. 전반적으로 다 행복한 변화들인데, 그럼에도 향후 몇 년 동안의 불확실성이 있다보니 내 투자 포트폴리오를 현명하게 운용하기 위한 고민과 공부를 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은 포트폴리오 이론과 자산배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자산배분이론에서 ‘전략(strategy)’과 ‘전술(tactic)’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전략은 ‘어디로 갈 것인가’, 즉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고, 전술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즉 당장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이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산배분의 형식은 크게 전략적 자산배분과 전술적 자산배분으로 분류된다.
1. 전략적 자산배분
전략적 자산 배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의 기본 구조를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 60%, 채권 30%, 금 10%와 같이 자산별 목표 비중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건 어떤 자산에 대한 베팅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관리’하는 개념에 가깝다.
투자의 목적, 기간, 요구 수익률,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크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장기적으로 얼마 만큼의 수익을 위해 어떤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 것인가?”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장기 기대수익률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가격 변동과 손실 가능성도 커진다. 반대로 채권이나 현금 비중을 높이면 변동성은 낮아지지만 기대수익률도 함께 낮아질 수 있다.
이론적으로 소위 황금 비율의 최적화된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한 오랜 연구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그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개인 투자자의 심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전략적 자산배분은 가장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나의 목표와 위험 감내 수준에 맞는 장기적인 균형점을 찾는 고민이 함께 담겨야 할 것이다.
한 번 정한 투자 비중을 영구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산의 가격이 달라지고, 투자자로서 나의 성향과 환경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자산의 비중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정한 자산배분의 비중이 정해졌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전략적 자산배분은 만약 주식 60%, 채권 40%로 시작한 포트폴리오에서 주가가 올라 주식 비중이 70%가 되었다면, 주식을 팔고 채권을 사서 원래의 비중으로 맞추는 리밸런싱(rebalancing)의 작업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시장 상황을 판단하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정한 노선을 유지해 나가는 투자 방법이다.
2. 전술적 자산배분
전술적 자산배분은 전략적 자산배분과 달리 시장 상황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자산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기본 전략이 주식 60% 채권40%라고 하더라도, 향후 주식시장의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면 주식 비중을 65%로 늘리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지금 시점에 어떤 자산이 상대적으로 유리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판단에는 필연적으로 경기 흐름, 금리, 물가, 기업 실적, 밸류에이션, 환율, 투자심리 등 다양한 변수가 활용된다. 전략적 자산배분이 투자자의 장기적인 조건을 중심으로 한다면, 전술적 자산배분은 현재 시장 환경이 중심이 된다.
이런 시장의 변화를 활용해 벤치마크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거나, 예상되는 위험을 최소화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이런 역동성이 있는 만큼 어려움도 크다. 시장의 방향뿐 아니라 움직이는 시점까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내 예측이 1년 빨리 맞아도 그건 틀린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확한 판단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자산 비중 변경을 위해 너무 잦은 거래를 하다보면 거래비용과 세금이 발생하고, 또 매순간 투자자의 감정이 개입할 리스크도 있다. 나는 전술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시장의 공포와 탐욕에 반응하는 충동적인 매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3. 전략 없는 전술의 위험
전략적 vs 전술적 자산배분의 차이를 공부하면서 중요하다고 느낀 점은, 전술은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사고파는 행위는 전술도 아니고, 생리적인 ‘반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서운게 눈앞에 나타나면 눈꺼풀이 자동으로 감기듯이 말이다.
물론 제대로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일반 투자자 중 그런 사람은 극소수의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극소수의 인재는 내가 아닐 확률이 높다.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도, 훈련받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인지라, 결과적으로 비쌀 때 사서 쌀 때 팔아버리는 최악의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전략이 명확하면 현재 내 포트폴리오가 왜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지 설명이 가능하고, 현명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주식이 하락할 때도 감당가능한 위험 수준 안에 있는지, 투자의 목표가 달라졌는지, 아니면 모든 건 그대로인데 (미스터 마켓의 변덕으로) 시장의 가격만 변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전략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일반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략은 모든 상황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수없이 다양한 상황에서도 판단의 기준을 잃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시장은 결코 같은 수 없겠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통하는 일반적인 원칙에 근거한 전략은 시장의 정신없는 일상을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전략은 중심(Core)이고, 전술은 조정(Fine-Tuning)
여기까지를 두고 생각해보면, 전략과 전술이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전략적 자산배분을 포트폴리오의 중심으로 두고, 그 주변에서 제한적으로 전술적 판단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목표 주식 비중을 60%로 설정하되, 시장 상황에 따라 55~65% 범위 안에서만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장기적인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환경의 변화를 일정 부분 반영할 수 있다. 전략과 전술이 모두 존재하는 투자다.
물론 세부적으로 전술적인 조정을 하려고 해도 원칙, 즉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조건에서 비중을 변경할 것인지, 최대 조정 범위는 얼마인지, 언제 원래 비중으로 돌아갈 것인지 등.
그렇지 않으면 전략과 전술의 경계가 흐려지고, ‘뇌동매매’를 하고 그 판단을 사후에 그럴듯하게 합리화해버릴지도 모른다.
5. 꽃을 자르고 잡초에 물을 준다?
자산배분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이러한 자산군 리밸런싱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항상 뒤따른다.
잘나가는 자산을 단지 많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팔아야 하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그것이 전략적으로도, 그리고 통계적으로도 우월하다고 한다.
하지만 피터 린치는 투자자들이 수익이 난 종목은 너무 일찍 팔고, 손실이 난 종목은 언젠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계속 보유하는 행동을 경계했다. 잘 자라고 있는 꽃을 잘라내고 잡초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는 비유다.
좋은 기업의 실적과 경쟁력이 계속 개선되고 있는데 단지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매도한다면, 장기 수익률을 만들어내는 소수의 승자를 너무 일찍 포기하게 될 수 있다. 린치 역시 일부 종목이 크게 상승해야 전체 포트폴리오가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밸런싱은 위험을 낮출 수는 있지만, 잘못 적용하면 포트폴리오의 가장 훌륭한 자산을 반복적으로 줄이고 가장 부진한 자산을 늘려 나가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산배분 원칙과 승자를 오래 보유한다는 바이앤홀드(buy-and-hold) 원칙은 서로 충돌하는 것일까.
6. 복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도 이 질문에 기름을 붓는다.
버핏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그 기업의 남은 존속기간(“Until Judgment Day”, 즉 “심판의 날까지”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동안 투자자가 꺼내 갈 수 있는 현금의 현재가치로 정의한다. 즉, 주식의 가치는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되팔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기업이 장기간 창출할 현금흐름에서 나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을 분석하려면 투자자는 사실상 장기 보유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일의 주가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기업이 벌어들일 현금을 추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버핏은 뛰어난 경영진이 운영하는 훌륭한 기업을 보유했을 때 선호하는 보유기간은 영원(forever)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어떤 종목이든 무조건 평생 보유한다는 뜻은 아니다. 버핏이 이끌던 버크셔해서웨이 또한 필요하다면 매도도 하고, 심지어 상대적으로 짧게 보유하는 트레이딩 매매를 하기도 한다.
‘영원히 보유한다’는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그 기업이 오랜 기간 높은 자본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가.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는가. 벌어들인 이익을 합리적으로 재투자할 수 있는가. 경영진은 유능하고 정직한가. 그리고 그 모든 장점을 감안하더라도 매입가격은 합리적인가.
이 글에서는 어떤 기업이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는지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별도의 글이 필요하다. 나 역시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어쩌면 평생)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샀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보유기간 자체가 수익률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복리는 매년 발생하는 수익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수익률이 중단되지 않고 누적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훌륭한 기업이 내부에서 이익을 재투자하고, 그 재투자된 자본이 다시 이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투자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동은 자주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오래 기다리는 것일 수 있다.
버핏이 ‘심판의 날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투자자 전체가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결국 기업들이 실제로 벌어들인 이익에서 나온다.
결국 장기투자의 본질은 가격표의 변화가 아니라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7. 장기 보유와 자산배분의 충돌?
여기서 다시 질문.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고 그 안에서 복리가 작동하도록 기다려야 한다면,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일정 비중을 매도하는 기계적인 리밸런싱은 이 원칙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포트폴리오의 5%에서 출발해 장기간의 성장 끝에 15%가 되었다고 하자. 이때 단순히 목표 비중을 초과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유량을 다시 5%로 줄인다면 위험은 분명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을 재투자할 수 있는 기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반대로 아무런 상한 없이 자산을 보유한다면 포트폴리오 전체가 하나의 기업이나 산업, 자산군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자산의 복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포트폴리오 전체의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8. 현금흐름을 통한 리밸런싱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 중 하나가 현금흐름을 통한 리밸런싱이다.
가격이 오른 자산을 즉시 매도해 목표 비중으로 되돌리는 대신, 새로 들어오는 자금을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산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금흐름에는 근로소득에서 새로 투자하는 돈, 기업에서 받은 배당금, 채권 이자, 만기가 돌아온 예금과 채권, 일부 사업이나 부동산에서 발생한 현금 등이 포함될 수 있겠다. 직장인의 경우에는 근로소득이 가장 일반적일 것이고.
예를 들어 주식 60%, 채권 40%를 목표로 했는데 주식 상승으로 실제 비중이 70%, 채권 30%가 되었다고 하자.
기계적인 리밸런싱은 주식을 일부 매도하고 채권을 사는 것이다.
한편 현금흐름 리밸런싱은 기존 주식을 당장 팔지 않는다. 대신 앞으로 들어오는 신규 투자금을 채권에 우선 배분한다. 배당금 역시 주식에 재투자하지 않고 부족한 자산군을 채우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주식의 성장 과정은 계속 유지하면서도 전체 포트폴리오의 불균형은 점차 완화된다.
이 방식은 투자 축적기에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특히나 유용할 것이다. 근로소득이 계속 들어오고 매달 새로운 자금을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보유 자산을 매도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준의 비중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9. 전략과 전술 사이
현금흐름 리밸런싱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전략적 자산배분과 전술적 자산배분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략적 성격을 가진다. 신규 자금이 어디로 향할지는 미리 정한 장기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주식이 과도하게 커졌다면 채권이나 현금을 채우고, 안전자산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면 신규 자금을 주식에 더 배분한다.
시장을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원래 계획한 위험 수준에 가깝게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다.
동시에 일정한 전술적 성격도 가진다.
투자자는 기존 보유 자산을 강제로 매도하지 않고, 현재의 밸류에이션과 투자기회에 따라 새로 들어오는 돈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이 높고 기대수익률이 낮다고 판단하면 현금이나 채권을 먼저 축적할 수 있다. 반대로 우량기업의 가격이 크게 하락해 기대수익률이 높아졌다고 판단하면 신규 자금을 주식에 집중할 수 있다. (그 판단의 정확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다만 전통적인 전술적 자산배분처럼 바쁘게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기존 자산을 적극적으로 사고파는 대신 현금 여력이 되는 만큼 제한적으로 자산의 배분을 조절한다.
따라서 현금흐름 리밸런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전략이 신규 자금의 기본 방향을 정하고, 전술이 그 자금의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한다.
이렇게 장기 목표 비중이라는 전략적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투자기회와 보유 자산의 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접근법 사이의 절충안이 된다.
10. 현금흐름 리밸런싱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현금흐름을 통한 리밸런싱의 한계도 뚜렷해 보인다.
이 방식은 투자자산의 규모가 아직 크지 않고, 근로소득처럼 안정적인 외부 현금흐름이 계속 발생하는 투자자에게 특히 유리하다. 매달 새로 들어오는 투자금이 기존 포트폴리오에 비해 유의미한 규모라면, 보유 자산을 매도하지 않고도 신규 자금의 배분만으로 자산 비중을 상당 부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산이 1억 원이고 매년 2천만 원을 새로 투자할 수 있다면, 연간 신규 자금은 기존 자산의 20%에 해당한다. 주식 비중이 다소 높아졌더라도 이후의 투자금을 채권이나 현금성 자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비교적 빠르게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산이 10억 원으로 커졌는데 연간 신규 투자금이 여전히 2천만 원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규 현금흐름은 전체 자산의 2%에 불과하다. 자산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발생한 비중 변화를 근로소득만으로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 있다.
투자가 잘되어 자산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외부 현금흐름의 영향력은 작아진다. 근로소득이 꾸준히 증가하더라도 금융자산이 복리로 성장하는 속도를 계속 따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금흐름 리밸런싱은 자산 축적 초기에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질 수 있다. 이때는 필연적으로 자산을 사고파는 형식으로 리밸런싱을 해야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금과 유동성의 중요성이 다시 보인다.
11. 현금은 전략자산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은 흔히 수익을 내지 못하고 대기하는 자산으로 여겨진다. 나 역시 얼마 안되는 몇 만원 수준의 용돈이 수시입출금 통장에 틀어박혀서 0.1% 정도 이자를 받고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실제로 주식시장이 상승하는 동안 현금을 보유하면 전체 수익률의 상방이 제한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금의 역할을 수익률만으로 평가하면 중요한 기능을 놓치게 된다. 예금과 적금, 단기채권, RP와 같은 유동성 높은 자산은 단순한 대기자금이 아니다. 시장 상황이 변했을 때 다른 자산을 매도하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전술적 선택권이다.
주식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졌다면 새로 발생한 배당과 이자, 만기가 돌아온 채권과 예금을 활용해 부족한 자산을 채울 수 있다. 반대로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해 기대수익률이 높아졌다면 현금성 자산의 일부를 주식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포트폴리오 내부의 현금성 자산이 다른 자산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유의미한 비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금 비중이 전체 자산의 1~2%에 불과하다면 시장이 크게 움직였을 때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이다. 심리적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제 자산배분을 바꿀 정도의 전술적 수단이 되기는 어렵다.
반면 일정 수준의 현금과 단기채권을 유지하면 외부 소득의 상대적 영향력이 작아진 뒤에도 포트폴리오 내부에서 리밸런싱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현금을 무조건 많이 보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현금 비중은 장기적으로 성장자산에 투자할 기회를 줄이고 복리수익률을 낮출 수 있다.
핵심은 현금의 기회비용과 선택권의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현금은 수익률을 포기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투자기회를 살 수 있는 권리가 된다.
물론 내가 워런버핏처럼 훌륭한 투자처를 명확하게 집어낼 수 있다면 이 현금을 놀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회비용이 상당하겠지만, 나는 워런버핏이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현금 비중은 투자자의 성향, 소득 안정성, 투자자산 규모, 가까운 시기의 자금 수요, 위험자산 비중, 시장 하락 시 추가 투자 의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근로소득이 전체 자산에 비해 충분히 크다면 외부 현금흐름 자체가 일종의 현금성 자산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대로 포트폴리오가 커져 근로소득의 영향력이 미미해지면, 유동성 자산을 포트폴리오 내부에 별도로 확보할 필요성이 커진다.
즉, 자산 축적 단계에 따라 리밸런싱의 재원도 달라진다.
초기에는 월급과 신규 투자금이 리밸런싱의 중심이 된다. 자산이 커진 이후에는 배당과 이자, 채권 만기자금, 예금과 RP 등 포트폴리오 내부의 유동성이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설령 적립식 지수추종 투자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려는 투자자도, 주가의 최대낙폭(MDD)을 견딜 수 있는 수준까지 통제하기 위해서는 현금을 전략자산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12. 매도는 가격보다 논리의 문제
개별 기업의 매도 기준도 단순한 가격 상승 여부와 분리할 필요가 있다. 주가가 올랐더라도 다음과 같은 조건이 유지된다면 장기 보유를 이어갈 수 있다.
기업의 경쟁우위가 유지되고 있는가. 이익과 현금흐름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추가로 투자된 자본에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가. 경영진의 자본배분은 합리적인가. 현재 가격에서도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충분한가. 처음 투자했던 논리가 여전히 유효한가.
반대로 주가가 오르지 않았거나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투자 논리가 훼손되었다면 매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피터 린치의 꽃과 잡초 비유는 단순히 상승한 종목은 보유하고 하락한 종목은 팔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꽃과 잡초는 주가의 방향이 아니라 기업의 현실로 구분해야 한다.
주가가 하락해도 기업의 경쟁력과 내재가치가 성장하고 있다면 꽃일 수 있다.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사업의 질이 악화되고 시장의 기대만 높아지고 있다면 잡초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매도 기준은 ‘얼마나 올랐는가’보다 ‘앞으로도 왜 보유해야 하는가’에 가까워야 한다.
13. 내 투자에 맞는 전략과 전술
종합해보면 보면 나에게 맞는 자산배분은 완전한 기계적 리밸런싱과 무제한적인 집중투자의 중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전략적 자산배분을 통해 자산군별 장기 목표와 허용 범위를 정한다. 주식은 장기 성장과 복리의 핵심 자산으로 둔다. 채권과 현금은 시장 하락기에 좋은 주식을 팔지 않게 해주고, 새로운 기회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완충장치로 본다. 금과 같은 대체자산은 높은 생산성을 기대하기보다 통화가치와 극단적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으로 볼 수 있겠다.
개별 기업은 단순 가격 상승만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좋은 기업이 높은 수익률로 자본을 계속 재투자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오래 보유한다.
다만 자산군과 개별 기업에는 서로 다른 수준의 상한선을 둔다. 좋은 기업의 성장을 허용하되, 하나의 판단이 투자자산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도록 한다.
리밸런싱의 우선순위도 정할 수 있다.
- 첫째, 신규 투자금을 부족한 자산에 배분한다.
- 둘째, 배당과 이자 등 포트폴리오 내부에서 발생한 현금을 재배치한다.
- 셋째, 추가 매수를 중단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자산이 따라오도록 한다.
- 넷째, 그럼에도 위험 상한선을 크게 넘어선 경우에만 일부 매도를 검토한다.
이 순서를 적용하면 매도는 리밸런싱의 첫 번째 수단이 아니라 마지막 수단이 된다.
전술적 자산배분 역시 기존 보유 자산을 크게 사고파는 방식보다는 신규 자금의 배분 방향을 조절하는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다.
좋은 기업이 스스로 복리의 힘을 발휘할 시간을 허용하면서도, 새로 들어오는 자금으로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꾸준히 조정한다.
쓰다 보니 장황해졌는데, 전체 논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투자에서 전략은 포트폴리오의 방향과 위험의 경계를 정하고, 전술은 그 안에서 신규 자금과 유동성을 어디에 배분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좋은 자산의 복리는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되, 하나의 자산이 전체 포트폴리오를 좌우하지 않도록 관리한다. 리밸런싱은 신규 투자금과 배당·이자 등 현금흐름을 우선 활용하고, 매도는 투자 논리가 훼손되거나 위험 한도를 크게 벗어났을 때의 마지막 수단으로 둔다.
결국 좋은 포트폴리오는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내는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장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