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배낭여행 #8-무쓰] 츠가루 해협을 건너 혼슈로 가는 길
※ 이 글은 2023년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록입니다.
흐릿한 날 아침. 하코다테 역 앞 토요코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었다. 짐을 미리 싸두고, 조식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하코다테를 떠나는 날이자, 홋카이도 섬을 떠나는 날이었다. 배를 타고 일본 본토, 혼슈 섬으로 건너가는 일정이었다.
간만에 배낭을 다시 메니 이제야 본격적인 배낭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삿포로는 가족 여행으로 몇 번 찾은 곳이지만, 그 외의 지역은 오래전 일부만 가보았거나 전혀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본 전역을 천천히 걸어서 여행하고 싶었다.
하코다테 역 앞 토요코인의 조식은 꽤 마음에 들었다. 평소엔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며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메뉴가 조금씩 바뀌는 호텔 조식은 그야말로 호사였다. 오늘은 이동이 길 예정이라 든든히 먹어두자는 생각에 접시를 두 번이나 채웠다. 일본은 커피가 한국보다는 비싼 편이라, 마찬가지로 2잔을 비웠다.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잿빛이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였다.
호텔에서 페리 터미널까지는 약 6km. 하코다테 만을 따라 1시간쯤 걸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열차를 타기로 했다. 역에서 도난이사리비철도를 타고 10분쯤 이동해 나나에하마 역에 내렸다. 거기서 다시 20분 정도 걸으면 페리 터미널에 닿는다.
등굣길인 듯한 학생들과 함께 터미널 쪽으로 걸었다.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교복 대신 사복을 입은 학생들이라, 어디 체험학습이라도 가는 듯했다.
오늘 향하는 곳은 혼슈의 북단, 도호쿠 지방이다. 아오모리, 하치노헤, 센다이로 이어지는 지방이지만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접근성도 낮고, 대도시와 가까운 센다이로 관광객이 몰리는 탓이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홋카이도에서 간토로 넘어가는 관문 같은 지역이었다.

이번 목적지는 혼슈 최북단의 시모키타 반도. 츠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홋카이도와 마주한, 도끼날 모양의 땅이다. 참치로 유명한 곳이지만,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오소레잔’이라는 산 때문이다. 유명한 영지(靈地)로, 유황 온천과 황량한 풍경 때문에 ‘지옥의 산’이라 불린다.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샤먼킹>의 영매 캐릭터가 이 곳 출신이었다(아마도?).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절, 그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예전부터 무덤, 죽음, 지옥과 같은 심령 테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여행을 위해 지나가야 하는 경로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일본 본토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귀신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배를 타고 반도에 입성한다는 재미도 있었다. 출국 전 여행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부산~후쿠오카로 배를 타고 들어갈까 고민하기도 했던지라, 일본 여행 중 배를 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20분 정도 걸어서 페리 터미널 20분쯤 걸어 터미널 입구에 닿았을 때, 마침 페리 한 대가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탈 배였다. 후진으로 천천히 방향을 돌리며 접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젯밤 미리 예약해둔 표를 발권했다. 하코다테–오마 구간, 캐주얼석 2,580엔. 약 1시간 반 소요된다고 했다.
탑승 안내에 따라 차량용 게이트로 들어서니 넓은 주차공간이 펼쳐졌고, 계단을 따라 탑승객 라운지로 올라갔다. 선내는 은은한 주황빛 조명에 차분한 분위기였다. 라운지에는 자판기와 테이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좌석은 세 종류였다. 스탠다드석은 신발을 벗고 앉는 좌식, 캐주얼석은 2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의자형 방, 퍼스트클래스는 약간 더 아늑한 공간이었다. 나는 창가 캐주얼석을 배정받았다. 승객은 나를 포함해 두세 명뿐이었다.
데크 위에도 벤치가 있었지만, 날씨가 거칠어 오래 머무르진 못했다. 페리가 출항하자 저 멀리 어제 올랐던 산이 보였다. 바람이 세지고 파도가 튀어 금세 실내로 들어왔다.

선내 자판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노트북을 켜자, 갑자기 멀미가 밀려왔다. 선체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속이 출렁였다. 결국 남은 한 시간을 눈 붙이며 보냈다.

안내 음성과 함께 페리가 오마항에 도착했다. 페리에서 내려 터미널까지 가는 통로는 흡사 비행기를 타고 내린것과 같았다.
터미널 문을 빠져 나오자마자 거대 참치가 나를 반겨줬다. 구글맵으로 '오마'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참치 모형의 이미지가 나오는데, 명물은 명물인가보다. 시간이 된다면 참치를 맛보고 이동하고 싶어졌다.

먼저 버스 시간을 알아봐야 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가 있는 '무쓰'라는 도시까지 이동해야하는데, 구글맵으로는 대중교통편이 확인되지 않았다. 해서 로컬버스를 찾아야 했다. 우선 바깥으로 나와 관광객용 대형 지도 간판을 확인했다. 추측컨데 해안가를 따라 이동해야하는데, 버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다시 페리 터미널로 들어와 직원에게 물어보니 벽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안내해줬다.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내가 놓쳤던 것 같다.

먼저 무쓰시행 버스를 확인했다. 구글맵에는 노선이 표시되지 않아, 터미널 직원에게 직접 물었다. 벽에 붙은 시간표를 가리키며 설명해줬다. 11:57과 16:07, 단 두 대뿐이었다. 시골에 왔다는 게 체감이 되는 배차간격이었다.
아쉽지만 참치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무쓰시에 도착해서 참치회를 찾는게 더 현명할 것 같았다.
버스는 일반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였다. 아까 지도에서 봤던대로, 해안선을 따라 굽이진 길을 1시간반 가량 달렸다. 길이 예상 외로 험난했다. 마치 강원도의 산길을 연상케 하듯 길은 구불구불했고, 폭이 좁은 2차선 도로였다. 왼편엔 낭떠러지, 오른편엔 바다. 기사님은 익숙한 듯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조용한 시골길이지만 주행은 꽤나 다이나믹했다.


이동 중에 도착지 근처에 유명한 스시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목적지로 삼았다. 구글맵으로 조회했을 때는 내가 도착할 무렵에 영업 중이어서, 거기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이동하면 될터였다.
어느정도 마을스러워 보이는 동네가 나와서 내렸다. 알고보니 목적지보다 조금 빨리 내려서 예상보다 더 걸어야 했다.

버스를 내리고 식당까지 30분 정도를 더 걸어가는데, 처음에는 잔잔했던 이슬비가 바람과 함께 점점 강해졌다.
맞바람이 불어오니 몸이 유독 지치는 기분이었다. 우산으로 비바람을 가려보려고 했지만, 강풍에 우산이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여차저차 스시집에 도착했다. 식당이름은 “스시 우에노” (鮨うえ乃).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가게 앞에 ‘휴게중’이라는 푯말도 보지 못하고 들어갔다.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주방 쪽에서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엄청 미안해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온몸으로 미안함을 표현하셨다) 브레이크타임이라고 안내해주셨다. 생쥐처럼 젖어 있는 내 꼴이 어지간히 불쌍했나 보다. 젖은 옷차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5시에 영업 재개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숙소로 향해야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와보자 생각하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결국 숙소로 향했다. 마을길은 관광지라기보다 주거지에 가까웠다. 낮은 목조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바람에 젖은 골목이 길게 이어졌다. 멀리서는 내가 목표로 하는 오소레잔이 안개 뒤에 숨어 있었다. 1시간 가량 걸었던 것 같다.

숙소 도착. 역 앞에 잡은 숙소 “Hotel Folkloro Ominato”. 당일 날 숙소를 잡은 탓도 있겠지만, 이 근처에 호텔건물은 별로 보이지 않아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3성급 비즈니스 호텔은 큰 걱정 없이 들어가는 편이다.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도와준 여종업원이 한국말을 꽤나 유창하게 해서 내일 오소레잔보다이로 가능 방법에 대해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종업원의 안타까운 표정과, “거긴 겨울에는 못 가요..”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아. 홋카이도의 3월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혹시 주변 온천이나 트래킹길이라도 있을까 물었지만, 산 전체가 폐쇄된다는 말뿐이었다.
결국 참치초밥도, 오소레잔도 만나지 못했다. 길고 험한 하루였지만, 어쩐지 이런 허무함조차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숙소에서 반신욕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산속 온천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담갔다.